무엇보다도 모든 과학에 기저하는 것은 줄기찬 호기심, 즉 오류를 범하지 않으면서 탐구하고 이해하려는 정열이다. 어떤 물음은(예컨대, 죽음 후에도 삶은 있는가?) 과학을 넘어서는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이러한 물음에 답을 하려면 논리의 비약이 없을 수 없다. 다른 많은 아이디어들도(예컨대, 어떤 사람은 초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가?) 마찬가지다. 하나의 아이디어가 아무리 멋들어지고 기상천외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문제는 그 아이디어가 작동하느냐는 것이다. 검증하였을 때 그 예측이 확증될 수 있는가? 이러한 과학적 접근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모세와 같은 고대의 인물도 이 접근을 사용하였다. 검증하였을 때 그 예측이 확증될 수 있는가? 이러한 과학적 접근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모세와 같은 고대의 인물도 이 접근을 사용하였다. 선지자를 자칭하는 사람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그의 대답은 이렇다. 그 선지자를 검증해 보라. 만일 예언하는 사건이 '일어나지 않거나 사실임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그 선지자는 엉터리이다(구약성서 신명기 18장 12절). 마술사인 제임스 랜디(James Randi)는 사람의 신체 주변에서 아우라를 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검증할 때 모세의 방법을 사용한다. [랜디 : 내 머리 주변에서 아우라가 보입니까?] [아우라 주장자 : 그렇습니다.] [랜디 : 내 얼굴 앞에 이 잡지를 놓아도 아우라를 계속 볼 수 있습니까?] [아우라 주장자 : 물론입니다.] [랜디 : 그렇다면 만일 내 키보다 약간 높은 벽 뒤에 내가 서 있으면, 내 머리 위로 보이는 아우라를 가지고 나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 수 있겠네요. 그렇습니까?] 랜디에 따르면, 아우라를 볼 수 있다고 주장한 어느 누구도 이렇게 간단한 검증에 동의하지 않았다. 기상천외한 아이디어가 때로는 엄격한 검증을 받아서 지지가 되기도 한다. 1700년대에 과학자들은 유성이 외계에서 온 것이라는 생각에 코웃음을 쳤었다. 두 명의 예일 대학교 과학자가 관례에서 벗어나는 주장을 과감하게 내놓자, 토마스 제퍼슨은 야유 섞인 목소리로, "여러분! 돌멩이가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사실을 믿느니 차라리 이 두 양키 교수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믿겠소"라고 말하였다. 과학적 탐구는 때때로 회의론자들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증명하기도 한다. 과학은 대부분의 허무맹랑한 아이디어들을 영구운동 기계, 기적의 암 치료제, 과거로의 영혼 여행 등과 같이 잊혀진 주장들로 가득 찬 유형지로 추방해 버린다. 실제를 환상과 구분하고 사실을 난센스와 분리시키기 위해서는 과학적 태도, 즉 회의적이지만 냉소적이지 않으며, 개방적이지만 잘 속아 넘어가지 않는 태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과학자로서 심리학자들은 호기심으로 가득 찬 회의적 태도를 견지하고 행동의 세계에 접근한다. 이들은 다음의 두 물음을 끊임없이 던진다. 무슨 뜻이죠?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기업의 좌우명이 '이익이 된다는 것을 보여 주어라.'라면, 과학의 좌우명은 '증거를 보여 주어라.'이다. 부모의 행동이 아동의 성적 지향성을 결정하는가? 점성술사가 당신이 태어난 날의 별자리에 근거하여 당신의 특성을 분석하고 장래를 예측할 수 있는가? 후속 장들에서 보게 되겠지만, 대부분의 심리학자는 검증을 통해서 이러한 주장을 의심하게 되었다. 아이디어들이 경쟁적인 상황에서는 회의적인 검증을 통해서 어느 것이 실제와 맞아떨어지는 것인지를 밝힐 수 있다. 과학적 태도를 실행에 옮기는 데는 회의적 태도뿐만 아니라 겸손함이 요구된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의 아이디어를 부정해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최종 분석에서 중요한 것은 누구의 아이디어냐가 아니라 우리가 던지는 물음에 자연이 보여 주는 진리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만일 사람들이 우리의 아이디어가 예측한 대로 행동하지 않는다면, 그 아이디어는 엉터리다. 초기 심리학의 좌우명 중의 하나였던 '쥐는 항상 옳다'에 들어있는 것이 바로 이러한 겸손한 태도이다. 과학사가들은 호기심, 회의적 태도, 그리고 겸손이야말로 현대과학을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코페르니쿠스와 뉴턴을 포함한 많은 과학의 창시자들은 종교적 신념을 바탕으로 자연 앞에서 겸손하고 인간의 권위에 회의를 품었던 사람들이다(Hooykaas, 1972; Merton, 1938). 오늘날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은 때때로 과학, 특히 심리과학을 위협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사회학자 로드니 스타크(Rodney Stark, 2003a, b)가 언급하듯이, 과학혁명은 '신을 사랑하고 공경하기 위해서는 신의 경이로운 창조물을 충분히 존중할 필요가 있다'는 종교적 생각을 바탕으로 행동하는 신앙심 깊은 사람들에 의해서 주도되었다. 물론 과학자들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아가 강하고 자신의 선입견에 매달릴 수가 있다. 우리는 모두 선입견이라는 색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본다. 그렇기는 하지만 심리학자들을 다른 모든 과학자와 통합시켜 주는 것은 경쟁적인 아이디어들에 대한 호기심에 넘치고 회의적이며 겸손한 탐구이다. 과학자들은 다른 사람의 결과와 결론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과학적 태도는 우리가 보다 현명하게 생각하도록 만들어준다.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라고 부르는 현명한 사고는 가정들을 조사하고, 숨겨진 가치를 밝혀내고, 증거를 평가하며, 결론의 타당성을 검증한다. 비판적 사고자는 뉴스를 읽거나 대화를 경청할 때도 물음을 던진다. 과학자와 마찬가지로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 사람의 견지는 무엇인가? 이 결과는 일화적 사건이나 육감에 근거한 것인가 아니면 증거에 근거한 것인가? 이 증거는 인과적 결론을 정당화시키는가? 어떤 대안적 설명이 가능할까?' 등을 궁금해한다. 건강한 회의적 태도도 극단으로 치우치면, 증명되지 않은 아이디어는 어느 것이든 경멸하는 부정적 냉소주의로 전락할 수가 있다. 겸손함을 겸비한 비판적 태도, 즉 자신도 실수를 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놀라운 아이디어와 새로운 조망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태도를 갖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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